[ 수요일 ] - 글: 하루 (@HaruSky_) - 단편 소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수요일 ] 습한 공기에 숨이 막히는 날. 학교 건물은 햇빛을 그대로 받는데도 어찌 녹아내리지 않는지, 그런 의문이 생길 정도로 더웠다. '임수아'. 검은 펜으로 두껍게 '임수아' 라고 적어놓은 수영 가방을 매고, 수아는 학교 앞으로 찾아오는 셔틀 버스를 기다린다. 샛노란색 위, 하얗고 파란 글자로 적힌 '푸른결 수영 센터'. 드르륵 - "안녕하세요, 기사님." "어, 수아. 빨리 타라." 에어컨이 틀어진 셔틀 안은 마치 천국처럼 시원했다. "이런 날은 너네가 부럽다. 여름엔 시원한 물에 들어가서 수영 한 번 하고 나오면 정말 시원하겠네. 샤워도 한 번 하고 말이야." 기사님은 핸들을 돌리며 뒤를 향해 말했다. "그쵸, 이런 날엔 물에 들어가는 게 최고죠." . . . 수아는 셔틀이 멈추자 마자 벨트를 풀고 문을 열었다. 드르륵 - 수영 센터의 주차장을 지나, 수영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 수아 안녕? 코치님이 너 기다리신다. 빨리 들어가." 카운터 앞 아주머니의 말에 수아는 여자 탈의실 문을 열었다. 교복을 벗기만 하면 끝. 점심시간에 미리 교복 안에 수영복을 입어두었기 때문이다. 수아는 샤워실에서 가볍게 몸을 씻은 뒤, 수영장으로 향한다. "어, 우리의 임수아 오셨나?" "안녕하세요, 코치님." "어, 그래. 스트레칭 좀 하고 입수." 수아는 몸을 조금 푼 후, 물에 들어갔다. "아흐..." 찬 물이 온 몸을 감싸니 추운 듯, 그 더운 날엔 기분이 좋았다. "자유형 3바퀴만 하고 있어. 곧 연수 오겠다." "넵!" 수아는 '연수' 라는 이름에 반응했다. 연수 언니. 푸른결 수영 센터에서 연수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수아와 친한 사이이며, 수아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저 끝엔 연수 언니가 있어.' 그 생각으로는 100바퀴는 돌 수 있었다. 2바퀴째를 돌았을 때. "어, 우리의 에이스, 연수 님 오셨구나!" 코치님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연수 언니?' 연수 언니가 왔다는 말이 들려오자, 수아는 최대한 빨리 레인의 끝으로 헤엄쳤다. 그리고 급히 물안경을 벗었다. "언니!" "임수아, 하이. 어, 어. 나오지 마. 뭘 또 나오냐?" 연수는 금방이라도 물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수아를 말리듯 말했다. "야, 연우 무안하게 너네끼리만 얘기하냐?" "아, 최연우는 가. 너 수영도 안 하면서 왜 굳이 따라옴?" 연우. 연우는 연수 언니의 동생이었다. 수아와 동갑인 남자 아이. 물론 같은 학년에, 같은 학교지만 접점은 '연수 언니' 밖에 없어, 친하지 않았다. "... 안녕." "어, 안녕." 그 어색한 인사를 끝으로 수아는 다시 물안경을 썼다. 그리고 연수 언니와 조잘 거리며 코치님의 지시 대로 레인을 돌기 시작한다. 수아는 물 위를 헤엄치며 연수 언니와 수다를 떨 때가 가장 행복했다. "최연우 부럽다, 연수 언니가 누나라서." "야, 너 나 좀 그만 좋아해." "헤헤." "야, 최연수, 임수아! 빨리 돌아라, 원래 빠른 애들이 수다 떠니까 기록 안 좋아지잖아!" 수아와 연수는 코치님의 잔소리에 입을 다물고 급히 헤엄쳐, 어느덧 스타트 지점에 돌아왔다. "아니, 연우야. 너도 수영 잘할 거라니까? 봐라, 너네 누나가 얼마나 빠른지." "아, 저는 딱히..." 코치님은 그날도 연우에게 수영을 해보라고 꼬시고 있었다. 그러자 연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코치님에게 말한다. "아, 쟤는 수영 안 한다고요. 쟤 저질 체력이에요, 완전. 운동 드럽게 못한다고요." "저질 체력까진 아니거든?! 제발 밖에서까지 내 욕 하지 마!" "하여간, 방 구석에 쳐박혀서 게임이나 하니까 그렇게 운동을 못하지. 울 엄마, 둘째는 잘 못 낳았어. 잘 못 낳아도 한참 잘 못 낳았지." "자, 자. 잡담은 그만. 최연수 선수, 50m 한 번 하시죠. 동생한테 보여줘, 너 얼마나 잘하는지. 그러면 연우도 수영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걸?" "아뇨, 전혀요." 연우는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연수만 노려보았다. "아, 그래도 보여줘. 나도 볼 거임." 수아가 눈을 반짝이며 연수에게 매달렸다. "임수아, 너도 해야지." "아, 연수 언니 먼저요." "으이그." "아니, 진짜. 쟤가 진짜 수영을 잘한다고요? 어딜 봐서?" 연우의 투덜거림을 듣고 코치님은 호탕하게 웃었고, 연수 언니는 주먹을 들고 소리쳤다. "너 지금 '쟤'라고 했냐? 죽을래? 이게 어딜 누나한테!" 연우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했다. "임수아가 최연수 보다는 잘할듯." 그러자 코치님은 연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수아도 잘하지. 근데 우리 학원에서는 아직까지 연수가 1등이야. 연수 없으면 안 돼, 우리 학원 망해." 수아도 코치님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분 좋은 칭찬일 텐데, 연수 언니의 인상이 잠시 구겨졌다. "망하긴 무슨... 지금 코치님 은근 슬쩍 수아 돌려 까는 거 같은데!? 수아는 못한다 이거죠?" "아이, 그게 아니라 -" "야, 수아야. 너 학원 옮겨라. 코치님 못 됐다, 그치?" 수아가 키득거리며 연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코치님은 상처 받았다는 얼굴로 연우를 붙잡았다. "야, 연우야. 너네 누나랑 수아 못됐다, 그치? 지금 코치님을 두고 자기들끼리 욕하고 있어. 벌로 누나 100m 추가 시키자." "제 허락 안 받으셔도 돼요. 그리고 100m 보다 더 추가요." 코치님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난 잘못 없어. 연우가 그렇게 하래. 최연수 200m." "아, 진짜. 최연우 집 가서 보자. 머리털 다 뜯길 줄 알아라?" . . . 순식간에 200m 레인을 출발한 연수 언니는 물 위로 미끄러지듯 헤엄쳤다. 그 모습에 박수를 치며 신이 난 코치님은 연우의 어깨를 붙잡으며 외쳤다. "봐라, 너네 누나 진짜 잘하지?" "... 별로요. 저 진짜 관심 없는데." '관심이 없다니. 연수 언니가 얼마나 대단한데?' 수아는 연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코치님이 연수 언니에게 피드백을 외칠 때, 수아는 조심스럽게 연우에게 말을 걸었다. "야, 연수 언니 진짜 잘해. 봐, 엄청 빠르잖아. 내가 예전에 미꾸라지라고 부르기도 했어, 막 미끄러지는 것처럼 간다고 해서." "미꾸라지 닮은 건 맞는데, 미꾸라지가 더 잘 헤엄치는 듯. 누가 아무리 누나 칭찬해도 내 눈엔 그냥 괴팍한 최연수임. 괜히 애써서 칭찬하지 마." 수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쟤는 맨날 연수 언니 보고 사는 복도 모르고 저러네.' . . . 연수 언니는 물안경을 벗으며 외쳤다. "코치님, 임수아 시켜요, 빨리. 저만 이 굴욕을 당할 순 없어요." "임수아, 200m, 자유형." "아, 언니 진짜 이따가 두고 봐!" 수아는 다리에 힘을 주고 출발했다. . . . 물 속에 있는 동안, 코치님의 목소리가 몇 번 울렸다. "더 빨리! 기록 안 세울 거야?" 기록. "곧 대회잖아, 대회!" 대회. "좀만 더 하면 1등 할 수 있어!" 1등. "좀만 더 일찍 나오고, 한 시간만 더 늦게 집 가자. 연습 해야지, 곧 대회인데." 연습. . . . '난 수영이 하고 싶었는데.' '이제 수영은 내게 취미나 안식처가 아닌' '의무인 건가?' . . . 수아는 다시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왔다. 숨을 고르며 물안경을 벗었고, 코치님의 피드백을 들었다. "좀만 더 하면 기록 더 좋아지겠다, 그치? 좀 쉬었다가 이제 접영 -" '아, 또 기록이래.' . . .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 안. 그렇게 좋아하는 연수 언니의 목소리와 기사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아는 창문에 비친 자신에게 물었다. '너, 그런 생각 왜 해? 너 수영 좋아하잖아.' - 수영, 좋긴 하지. '근데 왜?' - 수영이 좋다니까? '좋다면서 왜 선수반 그만 둘 생각해?' - 선수반이 좋은 게 아니라니까? 수영이 좋다고, 임수아. '아, 수영만? ... 근데, 수영 선수 되면 수영이 직업이 되는 거니까, 맨날 수영만...' - 야, 선수는 아무나 하냐? 너 대회 좋아해? 1등 하는 거에 집착해? 기록 세우는 거 좋아해? 아니잖아. 난 그냥 수영만 하고 싶어. . . . '... 그래.' '수영만 하자.' . . . 다음 날, 수아가 수영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코치님은 외쳤다. "어, 수아야! 빨리 와봐, 이번 대회 있잖아 -" "코치님." "왜?" "대회, 꼭 제가 나가야 해요?" "... 왜? 너 이번에 대회 못 나가니?" "... 그럴 것 같은데요." "무슨 일 있어?" "그냥 나가기 싫어서요." "... 수아야. 장난 치지 말고." "장난 아니라, 나가기 싫어서요." 코치님은 잠시 말이 없다가, 눈을 가늘게 뜨시며 말하셨다. "임수아, 너도 알잖아. 어쩔 수 없어. 선수반은 나가기 싫다고 해서 안 나가고, 그런 거 아니야." "... 그럼 선수반 그만 둘게요." "수아야,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프니? 몸이 안 좋아?" "... 선수반은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너 어제까지만 해도 기록 올린다고 열심히 했잖아. 수영 좋아하잖니?" "좋아하죠. 그래서 그만 둘래요. 전 선수반에서 계속 수영 하면, 언젠가 수영이 싫어질 것 같아요. 수영이 싫어지기 전에 그만 두고 싶어요." "... 후회 안 하겠어? 진짜?" "네. 전 그냥 취미로만 하고 싶어요." "... 취미? 그런데 수아야. 너 정말 수영에 재능이 있어. 지금까지 오래했고, 진심으로 좋아하고. 나는 코치로서 너가 너무 아깝다." "저도 막상 그만 두려니 아깝고, 아쉽긴 해요. 그래도 후회는 안 할 것 같아요." "... 그래, 알았다, 수아야. 가서 몸 풀고 있어." . . . "야, 임수아! 나 왔는데 인사 안 해, 오늘은?" 연수 언니가 외쳤다. 수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대한 소식 있음!" "야, 뭔데, 뭔데?" "나 선수반 안 할 거임." "엥? 뭔 소리야?" "말 그대로. 선수반 그만 둘 거라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참고사항 및 참여자'에 [ 수요일 ] 2부가 있습니다.*
*'사용 방법' 아래에 [ 수요일 ] 1부가 있습니다.* [ 수요일 ] "... 뭐냐, 오늘 만우절임? 너가? 다른 애면 몰라도, 수영 할 때마다 물개 되는 네가?" "엉, 선수반 싫어." 연수는 수아가 처음 보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수반이 싫다고? 왜?" "대회, 기록, 연습만 신경 쓰는 거, 나랑 안 맞아. 그게 끝." "야, 그런 거 싫다고 갑자기 그만 두는 게 어딨어?" "그게 싫으면 그만 두는 거지, 왜?" 연수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래, 너 맘대로 해. 너 후회해도 난 모른다." . . . 선수반으로서의 마지막 날이 지나고, 수아는 수영을 좋아하기 위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코치님이 바뀌고, 연수 언니와 다른 반이 된 것은 조금 슬픈 사실이었지만, 수영을 좋아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수아가 들어간 상급반의 옆 레인이 연수 언니가 있는 선수반이었다. 두 사람은 가끔씩 레인을 사이에 두고 잡담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날. "야, 수아야." "왜?" "나도 그만 둠." "... 뭐?" "나도 그만 뒀다고." "놀리지 마라, 진짜." "놀리는 거 아닌데. 진짠데?" "웃기지 마, 언니가 왜 그만 둬?" "나도 재미 없어서." "언니 에이스잖아. 언니 우리 학원에서 제일 잘하잖아." "그래서? 내가 재미 없다고." "... 그래.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언니도 상급반 오려고?" "아니. 난 이제 여기 안 나올 거임." "... 뭐?" "안.나.온.다.고!" "... 다른 학원으로 옮겼어?" "이제 수영 안 한다고." "... 언니 진짜 왜 그래?" "넌 수영 왜 그만 뒀는데?" "말했잖아, 재미 없다고." "재미 없다는 애가 왜 상급반으로 옮겼는데. 그냥 그만 두지." "... 수영이 싫어질까 봐." 연수 언니는 피식 웃었다. "나도. 나도 그래서 그만 두는 거야." "수영이 싫어질까 봐 그만 둔다고? 그게 뭔 소린데, 도대체!" "수영을 좋게 기억하려고 그만 둔다, 됐냐?" 수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만 벌리고 연수를 바라보았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은 '연수 언니' 라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려 넘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수아, 자신이었다. . . . 거짓말일 것이라 믿은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보장한 것은, 연수 언니가 그 다음부터 수영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 . . . 며칠 뒤, 학교. 수아는 급식을 받아, 아무 자리에나 앉으려 했다. 그런데,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연우가 보였다. 수아는 연우에게로 다가갔다. "야." 연우는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 야. 너 내 말 무시해?" 여전히 핸드폰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핸드폰을 끄고 수아를 바라보았다. "쏘리. 게임 안 끝나서." "... 연수 언니, 진짜 그만 뒀어?" "뭘 묻냐. 안 나오는 거 보면 모름?" "그걸 몰라서 묻는 거겠냐고." "어, 그만 뒀음." "아니,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가족인데 그것도 몰라?" 연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너 같으면 그 인간이 말 해줄 것 같냐?" "..." 수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 내가.' '연수 언니의 꿈을 망친 걸까?' . . . 용기 내어 연수 언니에게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 수아 - 언니, 진짜 수영 그만 두려고? 진짜? ] [ 연수 - ;;; 뭘 자꾸 묻냐; ] [ 수아 - 안 믿겨지니까 그렇지... ] [ 수아 - 나 그만 둔 것 때문에 그래? ] [ 수아 - 그런 거라면 미안... 그냥 언니라도 계속 하면 안 돼? ] ㄴ> ( 7월 11일 / 오후 9 : 21 ) . . .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나 굳세던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어쩌면 그 '1'이 연수 언니보다 더 오래 버틸지도 몰랐다. . . . [ 연수 - 야 ] [ 연수 - 사과 왜 하냐? ] ㄴ> ( 7월 13일 / 오후 5 : 06 ) [ 수아 - 사과가 문제야? 왜 그만 두냐고 ] [ 연수 -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건데? 내가 싫다고 ] [ 연수 - 왜, 너는 그만 둬 놓고서 나는 평생 했으면 좋겠어? ] ㄴ> ( 7월 13일 / 오후 5 : 09 ) [ 수아 - 그건 아닌데 ] [ 수아 - 안 아깝냐고... ] [ 연수 - 넌 안 아까워? ] [ 수아 - 아까워 ] [ 연수 - 나도 아까워 ] [ 연수 - 적어도 너랑 나는 서로 이해해야지 ] [ 연수 - 너도 수영 좋아하잖아 ] ㄴ> ( 7월 13일 / 오후 5 : 11 ) . . . 어쩌면, 수아는 처음부터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 . . 학교에서 가끔 스치듯 지나가는 연우는, 얼굴만은 연수 언니를 닮아있었다. 빈 자리를 채우려는 마음에 이끌려, 연우에게 다가갈 때면 연우 언니와 닮지 않은 성격에 실망하고 돌아서기도 했다. 나쁜 말로, 연우는 그저 수단이었다. 그래, 수아는 본인이 나쁘다고 느꼈다. 연수 언니가 보고 싶어, 연우를 연수 언니를 볼 수단으로 보고 있었다. . . .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 없어 보이는 연우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너, 왜 자꾸 나한테 치대냐?" "야. 말을 왜 그따위로 해? 치댄다고?" "이거 봐, 너 나 안 좋아하잖아. 근데 왜 나랑 다님?" "... 연수 언니 보려고." "이야, 솔직하네. 보통 이런 식으로 추궁하면 당황해서 얼버무리던데." "... 근데 말이야. 누나 이제 너 안 볼 것 같은데. 나 따라다닌다고 얻는 거 없어." "알아." 당황함이 섞인 연우의 웃음이 수아의 귓가를 맴돌았다. "알면서 왜 나랑 다니냐고." "알게 뭐야. 너 나 싫냐?" "그건 왜 묻는데. 싫은 건 아닌데, 너 좀 이상하긴 해." "싫은 거 아니면 왜 자꾸 그런 거 물어봐? 같이 다니지 말라는 거야?" 연우는 3초의 고민 후,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을 내뱉었다. "너,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 뭐?" "맞잖아. 너 게임 해?" "... 아니?" "운동하기 싫어서 집에 며칠 동안 처박혀 있었던 적 있어?" "... 아직 없는데." "거 봐." "아니. '아직'이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직?" "어, 아직." "왜, 나 따라하려고? 너 나 좋아해?" "닥쳐, 내가 너를 퍽이나 좋아하겠다. 연수 언니 후회하게 만들 거야. 너랑 다니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될 거야. 너, 너네 누나한테 나 어떻게 지내는지 잘 전해라?" "뭐? 야, 내가 은둔형 외톨이 같았냐?!" "아, 뭐. 그냥 말이 그렇지. 게임만 하고, 집 잘 안 나오고, 혼자 다니고... 잘 됐네, 마침 너도 친구 없잖아?" "아오, 진짜... 너 처음 봤을 땐 이런 애 아니었던 것 같은데. 최연수가 진짜 죄인이다, 애를 이따구로 만들어놓고..." . . . '이렇게 보니까.' '연수 언니랑 성격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 . . 수요일. 수아가 수영 학원을 가는 날이었다. 상급반에서의 생활은 순조로웠다. 기록에 집착할 필요도 없었고, 대회는 가끔씩 재미로만 나가도 됐다. 물을 털며 수영 안경을 벗던 순간. "... 최연우?" "이제 봤냐?" "너 왜 여기 있냐?" "너가 같이 다니자며." "아니, 그건 학교에서... 그보다, 여기까지 쫓아올 이유가 있음? 너야말로 나 좋아하냐?" "아, 토 쏠려. 최연수 같은 말투로, 그것도 수영장에서 수영복 입고! 진짜 최연수 같다. 그냥 너가 최연수 동생 해라." "... 연수 언니 얘기 자주 하네? 너 연수 언니 좋아하네." "아닌데. 너가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 온 김에 수영이나 하던가." "아, 싫어. 운동하다가 땀 좀만 흘려도 싫은데, 사람들 다 들어갔다 나온 물은 너무 더럽..." "야! 수영인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나까지 역겨워지잖아. 무례하네, 진짜." "으, 아무튼 싫어." "아오, 그냥 뒤에서 빠트려 버릴까 보다..." . . . 방학이 시작한 수요일. 어김없이 수영장에 찾아온 연우를 보고, 수아는 미간을 찌푸린다. "왜 자꾸 오냐고오! 쪽팔린다고!" "말을 왜 그따구로 함, 나 상처 받게." "상처 받고, 다신 오지 마라, 그냥." "아니, 왜 쪽팔리는데. 나 같이 잘생긴 남자가 찾아오면 좋지 않음?" "그 입 좀... 넌 진짜 그게 문제야, 그게 쪽팔린다고!" 코치님이 연우랑 사귀느냐고 물은 것 때문에 쪽팔린다는 것은... (안) 비밀. . . .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오후의 햇살이 남아있었다. "선수반 때는 집 갈 때 해 다 져있었는데..." "... 그냥 요즘 여름이라 해 길어져서 그런 거 아님?" "이씨, 이 매정한 놈. 감성도 모르고." . . . "너 나중에 뭐 하려고 그래?" "그건 왜 묻는데." "수영 선수 안 한다며." "얼씨구, 나한테 묻기 전에 너부터 정해." "나 장래희망 없는 거 어떻게 알았음?" "네 얼굴에 써 있음. '전 꿈도 없는 은둔형 외톨이 입니다.' 라고." "아, 왜 자꾸 은둔형 외톨이래. 나는 그냥 의사나 할까... 싶어서." "풉, 의사? 네가?" "나 이래봬도 꽤나 똑똑한데." "너가 진짜 퍽이나. 의사, 진짜 안 어울림. 차라리 돈 많은 백수로 산다고 해라." "그게 더 좋긴 한데." "... 에휴." "근데 의사는 갑자기 왜? 안 어울리게. 너네 누나한테 말하면 너네 누나 완전 기겁할듯. '너가? 의사를?' 이러면서 막..." "내가 사람 다친 건 또 잘 보거든." "올, 왜? 게임으로 사람 하도 많이 죽여서?" "나를 무슨 사이코패스로 만드냐. 그냥, 내 주변에 맨날 다치는 두 명이 있어서." 수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누구?" "너랑 누나." "아니, 운동하다 보면 누구나..."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음. 다치면서까지 꼭 해야 돼?" "큼... 반박이 안 되네. 아무튼, 나 다치면 너네 병원 가야겠네. 나는 꽁짜지?" "아, 넌 2배로 돈 내라. 안 그래도 보기 싫은 얼굴, 일할 때도 봐야한다고 생각하니까 토 나옴." . . . "토 나와." "못생겼어." "진짜 쪽팔려."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던 여름. 좋다는 말은 못하는 게 그들이었다. -END-